|패션브랜드┃Avedon Richard_ 포토그래퍼
1923 - 2004
RICHARD AVEDON _ 리챠드 아베든
에르메스Hermes,와 질 샌더Jil Sander의 패션 브랜드를 사진으로 표현했던 리차드 아베든의 패션사진의 세계_ 그는 사진작가의 최고 영예인 젬마상을 거듭 수상한 사진 작가로서_어빙 펜, 헬무트 뉴튼과 더불어 20세기 최고의 패션사진가로 굳게 자리 잡았다.
Advertising for Hermes,and Jil Sander
클래식 광고_ 브랜드 이미지_ 패션 사진
Classic AD_ Brand Image Map_ Fashion Photo & Fashion Trend Forecasts
justinKIM
베르사체_Claudia Schiffer_모델 클라우디아 쉬퍼
젬마상 수상자인 리차드 아베돈Avedon Richard_은 20세기 패션사진계의 거장으로 예술사진가로써도 자신의 스타일과 작품 세계를 확고히 세운 작가이다. 2004년, 아쉽게 타계하기 직전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상업적으로도 성공시킴으로 경영적 능력 또한 뛰어나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카메라맨으로는 처음으로 개인전을 연 인기작가 이기도 하다.
1923 뉴욕 출생_ 1929-1941 De witt Clinton고등학교와 Columbia대학에서 공부_ 1937-1940 De witt Clinton고등학교 문학잡지의 공동 편집장_ 1942-1944 미국 상선에서 근무_ 1944-1950 디자인 연구소에서 Alexey Brodovitch에게 사진과 디자인을 배움_ 1945 <주니어 바자> 스텝, 전속 사진가로 출발_ 1947-1984 <하퍼스 바자>와 <보그>지에 전속 스텝과 작가로 패션 사진계에 진출하여 파리 컬렉션 촬영_ 1950 뉴욕 아트디렉터스 클럽에서 최고 성취상 수상 _ 1952-1953 ‘Theatre Arts'의 편집장과 사진가로 활동_ 1957 영화 ‘퍼니 페이스’ 비쥬얼 컨설턴트로 참여_ 1959 사진집 <Observations> 출간 _ 1962 전시회 <Richard Avedon>_ 1963 시민 권리운동 촬영_ 1964 사진집 <Nothing Personal> 출간_ 1966-1990 <보그>지 및 패션사진가로 활동_ 1969 시카고를 포함한 미국 전역을 돌며 반전운동 촬영_ 1970 전시회 <Richard Avedon Portrait>_ 1971-1972 월남전 종군_ 1976 사진집 <Portrait> 출간_ 1978 사진집 <Avedon> 출간_ 1985 전시회 <In the American West>_ 1992 <The New York>지의 첫 사진스텝으로 발탁_ 1994 사진집 <Evidence> 출간_ 1999 사진집 <The Sixties> 출간_ 2004.11 대통령 선거와 관련 <The New York>지의 ‘On Democracy'를 위한 마지막 촬영중, 텍사스의 산 안토니오 병원에서 뇌출혈 증세로 생을 마감.
리차드 아베돈을 추억함
이 영 욱_ 연변대학교 예술대학 사진과 교수
리차드 아베돈과의 만남은 뉴욕 휘트니 미술관에서였다. 아베돈은 이날 자신의 회고전이 열리고 있는 휘트니에서 기획한 전시작품집에 사인하기 위해 특별히 방문중이었는데 그의 모습은 한 주 전에 읽은 "TIME"지 기사의 선입견 때문인지 필자의 눈에는 매우 쓸쓸하게 보였다. 타임지는 3월 28일자 기사에서, 아베돈의 휘트니 회고전을 "울적한 멋내기"라고 평가했다. 그것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원로 패션 사진가의 마지막 패션 몸부림"이라는 타임지의 연민성의 기사는 전체적으로 아베돈의 패션시대, 나아가 그의 사진시대의 마감을 얘기하는 것이기도 했다.
리차드 아베돈은 이 시대 가장 영향력 있고 화려했던 패션 사진가였다. 물론 지금도, 일흔 두 살의 나이로 다소 빛바랜 모습이긴하나 아직 최일선에서 활동중인 정열적인 패션작가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일에 대한 열정이 채 식지 않은 만년의 사진가임을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점차 그의 화려한 명성, 위대한 예술적 발자취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다. 아베돈이 지휘한 휘트니에서의 대규모 회고전도 바로 자신이 과거 50년 동안 이룩한 사진적 성과, 즉 패션과 인물과 예술사진에서 쌓아올린 명성과 업적을 다시 한번 패션계에 주지시킴으로써 아직은 누구도 능가할 수 없는 자신만의 사진 영역과 최종적으로는 자신의 영향력과 기획력(말하자면 경쟁력)이 아직 소멸시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전시회였다.
리차드 아베돈은 뉴욕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활동한 정통 뉴요커 사진가이다.
그는 1940년대 초반 개인적으로 패션사진을 찍어오다가 하퍼즈 바자의 아트디렉터인 알렉세이 브로드비치를 만나 40년대 중반부터 하퍼즈 바자(Harper's Bazaar)의 스탭으로 패션 사진계에 진출했다. 그 후 그는 50년 동안 파란만장한 사진의 길을 걸어왔다. 잡지패션의 전성기였던 50년대 60년대는 하퍼즈 바자를 비롯하여 시어터 아트, 보그, 룩, 옵저 베이션 등의 패션 전문잡지를 위해 사진을 찍었고,
라이프, 파리마치와 같은 시사성 잡지에서도 일했다. 한때(1971∼1972), 월남전에 직접 종군하기도 했으며, 또한 광고시장이 활황이었던 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말까지는 독립하여 샤넬, 크리스찬 디올, 캘빈 클라인 등에서 전성기 못지않게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1992년)에는 잡지 'The New York"의 첫 사진스텝이 되어 매스콤의 주목을 끈바 있다.
리차드 아베돈의 사진사적 업적은 바로 패션의 대중화와 인물사진의 패션화에 있다. 특히 포트레이트의 패션화는 가장 중요한 사진적 장르로 인정받고 있다. 물론 아베돈식의 포트레이트에 대한 비난이 없지는 않다. 한때 그의 포트레이트의 예술성을 의성을 의심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적도 있었고(이것은 두 가지 관점, 즉 아베돈에 비해 상대적 약세인 어빙 펜의 포트레이트에 대한 잠정적 지지와 항상 매스콤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아베돈에 대한 질시와 의심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치게 패션지향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아베돈의 패션 포트레이트 사진은 확실한 예술적 장르이다. 이것들의 실례를 보는 것은 너무도 흔한 일이다. 이를테면 70년대 중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예술적 포트레이트는 바로 아베돈 스타일이었다(한국에서도 80년대 중반 이후에 크게 유행한 바 있다).
휘트니 미술관에서 열린 리차드 아베돈의 대규모 회고전["Richard Avedon: Evidence, 1944∼1994"(1994.3.24∼6.26)]은 전시 타이틀에서 보여주듯이 아베돈의 50년 사진의 증거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자리였다. 600여점이 넘는 사진, 그리고 대부분 인체크기 이상의 사진들이 1,2층 벽면을 가득 메운 휘트니에서 가장 괄목할 사진들은 역시 아베돈의 패션 포트레이트였다. 휘트니에서 아베돈은 자신과 자신의 작업들을 연대기별로 진열시켰다. 예를 들면, 1923∼41년의 성장과정, 1942∼45년의 주니어 바자시절, 1946∼67년 하퍼즈 바자시절, 1967 ∼70년 보그, 룩시절, 1971∼72년의 베트남 종군시절, 그리고 자신의 사진전과 관련해서는 1972∼75년 "자콥 이스라엘 아베돈"전, 1975∼76년 "리차드 아베돈의 포트레이트"전, 1976∼79년 "아베돈의 사진:1947∼77년"전 1982∼89년 "미국의 서부"전, 마지막으로 1993년의 "아베돈의 자서전"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던 "TIME"의 기사처럼 휘트니 회고전에 대한 매스콤의 비평은 대체로 회의적이거나 연민성 기사가 주종을 이뤘다. 예를들면, "원로 패션사진가의 마지막 패션잔이(-Village Voice-)", "서글픈 풍경들(-See-)", "결국 모든 것이 패션일 수 밖에 없는 작업들(-New York Times-)" 등등이 대표적인 기사내용이다. 실제로 휘트니에서 아베돈은 사진의 내용보다는 그것을 효과적으로 패션화하는데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자신이 거의 반세기에 걸쳐 제작했던 패션, 인물, 스냅, 르포, 순수사진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이기 위해 애를 썼다.
예컨대 사진들이 세련되게(전위적으로, 때론 포스트모던하게) 보이도록 디스플레이에 무던히 신경썼으며, 나아가 아직도 젊은(패션)사진가들에게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편집과 레이아웃에 있어서 과감성을 보였다. 아베돈은 다양한 후레임의 사진 또는 유리가 없거나 라미네이팅 된 사진, 아니면 벽면에 길게 늘어뜨린 벼화 스타일의 사진들을 배치시켜 시각적 충격을 유도했다. 그렇지만 매스콤은 모든 것들을 시대적 조류에 부응하려는 아베돈의 골육지책으롤 받아들였다.
리차드 아베돈의 (패션)사진시대가 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히 쇠락했다. 쇠락의 원인은 아베돈이 몸담아 왔던 보그와 하퍼즈 바자의 독주가 더 이상 시대적으로 용납되지 않았던 까닭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광고시장의 다변화가 아베돈의 패션 사진시대를 마감하는 주 원인이 되었다. 80년대의 패션 사진계는 엄청난 물량증가와 함께 다량의 사진작가를 생산했다. 그리고 대부분 신세대인 이들 사진가들은 심심치 않게 아베돈과 비교되었다. 예를들면 허브 리츠(Herb Ritts), 부르스 웨버(Bruce Weber), 앨버트 왓슨(Albert Watson) 그래그 골만(Greg Gorman), 마크 셀리거(Mark Seliger), 애니 레이보비츠(Annie Leibovitz), 그리고 스티븐 마이젤(Steven Meisel)이 이 범주에 드는 대표적 작가라고 하겠다.
젊은 패션사진가들은 아베돈과는 달리 철저히 관능적이며, 개방적이고, 포스트모던하다.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있는 그들의 패션사진은 아베돈과 비교할 때 확실히 비교우위에 있다. 세실 비튼, 헬뮤트 뉴톤, 어빙 펜, 그리고 리차드 아베돈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모더니즘의 패션사진의 환타지는 격정적인 성(sex)과 상업적 패티시(Fetish, 물신성)를 무기로 하는 현대패션의 제 경향과는 비교될 수 없다. 이러한 상황들은 1990년대 들어서도 변하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90년대 들어 아베돈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많지가 않았다. 고작 캘빈 클라인의 광고를 감독하는 일과, AIDS 기금 마련을 위해 사진 경매시장에 나가 자신과 동료들의 작품을 파는 일이 전부였다. 지난 92년에 "뉴요커"의 사진스탭이 된 것이 그나마 아베돈이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고정 잡(job)이라면 고정 직업이다.
그렇다면 아베돈의 재기는 불가능한 것인가. 아베돈이 휘트니에서 다시 한번 일깨워준 그의 예술혼, 아베돈의 50년 사진적 증거들은 결코 간과될 수 없음은 증명되었다. 휘트니 미술관 입구부터 당당히 걸려있는 아베돈의 대작들은 이 시대 그 어떤 패션사진가도 이루기 어려운 작업의 결과들로서, 오직 그만이 해낼 수 있는 작품들이었다. 특히 지난 1985년에 발표된 "미국의 서무(In The America West)"는 아베돈의 작품중의 최대 압권이었다. 이 도큐멘터리성 사진들은 처음 발표되었을 때만 해도 "패션사진의 연장"이니 "(패션사진가에 의해)왜곡된 서부의 모습"이라는 등등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거의 10년이 지난 오늘 이들 사진들은 아베돈을 새로운 관점에서 다시 보게 하는 촉매 역할을 했다.
실물크기의 사진, 흰 배경지 앞에 선 다양한 서부인의 모습들, 비록 아베돈의 "미국의 서부"가 실질적 서부를 상징하는 대표성이 부족하더라도 그의 사진은 세밀하고 깊이 있는 영상, 그리고 완벽한 테크닉의 정수이다. 휘트니를 찾는 관람자들은 아베돈의 "미국의 서부"의 포트레이트 앞에서 새롭게 다가오는 리얼리티를 경험하였다. 아베돈의 포트레이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실재 인간과 마주하는 느낌을 받도록 하기에 충분한 감흥을 주었다. 이것은 바로 아베돈만이 해낼 수 있는 작업이요, 그의 사진의 영원성이다. 남들이 무어라 해도 아베돈이 남들과 다른 점은(사진가로서 위대함은) 역시 이처럼 큰 스케일, 정교함, 화려함, 그러면서도 끝까지 패션임을 잃지 않는 삶의 태도에 있다. 리차드 아베돈은 휘트니에서 이 모든 것들을 보여주려고 했다. - 진동선 -
사무엘 베켓_ Samuel Beckett,_고도를 기다리며 희곡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초상사진
리차드 아베돈 (Richard Avedon 1923 ~ 2004)
리차드 아베돈(Richard Avedon)은 현존하는 패션사진의 거장이요 예술사진가로서 스타의 반열에 있는 사람이다.그는 최근 까지도 왕성한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자신의 스타일을 상업적으로 성공시킨 경영 마인드가 탁월한 작가이다.
그는 1923 러시아로부터 이주해온 아들로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는 <하버즈 바자>와 <보그>에서 화려한 경력의 패션 사진가 이지만, 사진예술가로서도 대단히 인기 있는 작가이다. 상업적으로도 매우 성공해서 그의 스튜디오를 가리켜 리차드 아베돈 주식회사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이다. 최근의 작업은 그가 오랜동안 지켜오던 스타일을 벗어나 매우 그래픽적인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는데, 아베돈의 사진은 역시 70년대 이후 80년대 까지 보여주었던 흰 배경으로 한 초상사진을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인정하고 있다.
아베돈의 사진은 대상인 인물 그 자신이 사진 찍히고 있음을 스스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그러나 카메라 앞에 선 인물이 과장된 의식으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들어내거나 혹은 감추거나 하는 식의 의식된 포즈를 배제한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그의 사진에는 어떤 효과를 위한 사진가의 연출이나 장난이 없어보인다. 촬영방법 또한 교묘한 앵글이나 드라마틱한 조명, 무드가 나는 분위기등을 배제하며 그 인물이 어떤류의 사람인가를 암시 해줄 만한 최소한의 이력만을 남기기 위해서 자질구래 한 소도구를 사용치 않으며, 흰색 배경 앞에 마치 정물처럼 놓여 있다.
조명은 넓게 확산되어 각 부분에 골고루 비치는 인공광이나, 그늘에서 자연광을 쓰는데 이런 광선들은 셰도우의 디테일과 하일라이트 디테일을 매우 섬세하게 드러낸다. 이와 같은 현상은 그가 사용하는 8 × 10 인치 디어도르프(Deardorf) 뷰 카메라를 써서 초점심도를 아주 깊게 함으로써, 솜털까지도 셀 수 있는 정교함을 더해준다.
또한 49×61인치 혹은 그 이상의 대형 확대 인화의 정교함은 인물의 세부가 더욱 강조되어지게 한다. 모든 주름살과 머리카락 피부의 흉까지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는 것처럼 생생하고 적나라하게 된다. 이렇게 모든 것이 극도로 억제된 상황에서 오로지 인물자체에 대한 직관에만 의존하여 찍은 그의 초상사진들은 너무나 에너지가 강해서 화면을 뚫고 걸어나올 것 같은 강력한 인상을 준다.
1979년부터 이후 5년간 작업해서 발표한 <미국 서부에서(In the American West)>는 이와 같은 방법으로 제작된 대표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여기에 담겨진 인물들은 특히 이전에 유명인사 들과는 다르게 미국서부 사람들의 노동현장에 집적 찾아가서 힘들고 존중받지 못하는 일하는 남녀와, 무시되거나, 간과되는 사람들이 작업의 대상이었다. 역시 스튜디오에서 어느 정도 융통성 있는 포즈와는 다르게 야외에 만들어진 흰색배경으로 매우 경직되고 정적인 모습은, 그의 비 연출적인 의도를 매우 전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전에 오랫동안 패션사진가로서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인 아베돈이 이처럼 소외된 계층에 관심을 가지된 배경은 무엇일까? 그가 1973년 말보로 화랑에서 선 보였던 유명 인사들 시리즈에서 너무 지나치게 유명인사만 다루었다는 비난 여론을 의식한 것만은 아니다. 그 보다는 그의 일관적인 사진 형식에서 찾아야 할 것 같다.
오드리 헵번 초상
그의 인물사진의 특징은 유명인사의 매력적인 모습 보다는 어딘가 기묘하고, 덜 매력적인 인상을 전해주는 포즈의 순간을 잡아왔다. 그와 동시에 그는 사람들을 일부러 못생기도록 찍으려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나타내기 위해서 순 백색의 흰배경지를 뒤로하고 호감을 줄 수 있는 회화적 조명의 연출이나, 포즈를 일체 사용하지 않은 체 경찰이 피의자 사진을 찍듯이 단순히 스트레이트한 사진을 제작한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방법이 그가 인물의 모습 그 자체로부터 의미를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도 인 것이다.
리차트 볼튼은 <의미의 경쟁(The Contest of Meanimg)>에서 아베돈의 이러한 의도를 다음과 같이 꼬집고 있다.
“아베돈의 사실주의는 매혹적인 사진 속에 억눌려 있는 거북하고 고통스런 분위기를 묘사해낸 데 그 성공의 포인트가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인물들의 구체성에 대해서는 거의 알 수가 없다. 표현법의 문맥을 끊음으로써, 또한 필요 이상으로 크게 확대함으로써, 아베돈은 인물들로 하여금 오히려 침묵하게 한다. 인물들은 허공 앞에서 세밀화처럼 그려지고 부풋하게 떠올라 상형문자가 되고 암호가 된다. 이리하여 사진은 목적 없는 메시지가 되어 버린다. 그것들은 과 충전된 진실의 파편이 되어 공간 속으로 사라져간다.”
볼톤의 이와 같은 언급은 사실 아베돈의 사진의 시각적 효과가 전혀 연출된 것 같지 않은 순수한 상태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베돈이 선택하고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는 일련의 프로젝트가 관음증적 도취를 동반하고 있어, 인간존재의 진실을 드러내기에는 골란 하다고 지적하기 위함이었다. 볼턴이 말은 사실 아베돈의 사진 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사진에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다.
필자가 누누이 강조하지만 사진은 그 자체로 “무의미”한 것이고 “아무 말이 없다.” 의미는 항상 사진 밖에 있으며, 그것도 항상 단일한 의미로 고정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의미”는 사회적인 상호 문맥 속에서 위치 지워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이 아닌 사진으로 찍혀진 초상사진은 시각적으로 관람자의 눈앞에 있는 착각을 불러일으켜, 우리들에게 실재인물과 사진 속의 인물을 부인할 수 없는 동일시로 받아들이게 한다. 사진의 이러한 매체적 특성을 이용해서 정치가들은 자신의 초상사진을 대형으로 확대해서 관공서 곳곳에나 광장, 심지어 길거리에까지 내다 걸며 TV 골든아워를 독차지해 등장함으로써 항상 자신의 존재를 의식 시키려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스스로의 이미지를 마음속에 그리고 있고 이것은 대개의 경우 미화되어 있어 사진에 찍혀진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실망하거나 혹은 낯설게 느껴진 경우를 경험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카메라 앞에서 그토록 어색해 하고 감쳐진 자신의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하며, 렌즈의 시선을 피하려 한다. 이러한 고객의 심리를 잘 알고 있는 사진가는 인물의 실존하는 모습 그대로를 찍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욕망하는 이미지를 담아낸다.
즉 마스크를 벗기는 것이 아니라 메이컵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비단 상업 사진가 뿐 아니라 다튜멘타리 사진가에게도 해당된다. 비록 아무런 연출된 상황 없이 그 순간을 포착한다 해도, 그 자체가 이미 다큐멘타리 사진가의 의도된 리얼리티인 것이다.
즉, 그들은 나름대로 인물들을 해석하려 하기 때문에 비 연출의 방법을 선택했으며, 이렇게 하는 것 만이 사진에서 진실성을 담보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아베돈은 인물사진이 가지고 있는 피할 수 없는 한계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물사진가는 사진을 완성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나 자신이라고 할수 있는 상상된 인물을 모델이 되는 다른 사람 안에서 발견 해야만 하고, 그 사람은 그가 알지 못하는 나의 픽션 속으로 들어와야 한다. 나와 그의 관심사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의 이미지를 위해 각기 다른 욕망을 갖게 된다. 그가 변호하는 그의 상황이 내가 나의 요구를 변화하는 상황만큼 중요할 수 있지만 결국 조정자는 나인 것이다.”
초상사진의 가장 혁신적인 충격은 아마도 초상화보다 실물과의 유사성이 더 우월 하는 점 때문이 아니라 정교하게 추출된 인간의 인상을 포착하는데 있어 의도된 포즈가 아닌 순간적으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이다. 빠른 셔터 스피드와 고감도의 감광재료는 한 순간을 정지 시켜, 육안으로 놓치기 쉬운 인간의 다양한 제스처와 순간순간 변하는 감정의 흐름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그런데 아베돈의 초상 사진들은 사진의 이러한 특성들을 구태여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숨겨진 그의 전략이 있다.
아베돈의 사진이 순간의 정지로 보여지지 않는 것은 이미 인간은 움직이는 존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관객에게 그의 사진 속 에는 아무런 포즈도 없이 그저 정면 만을 응시하고 서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표정은 그 때 그 순간에 발생했던 사건이며, 이제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명백한 한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의 사진에는 커다란 움직임의 한 순간은 없지만 너무나도 조용하게 정적인 인물의 모습들에서, 오히려 더 미묘한 떨림을 섬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사진의 매력이다.
화가나 조각가에 의해서 그려지거나 만들어지는 초상은 그 제작 과정상 항상 여러 인상들의 종합이기 마련이지만, 사진의 초상은 한 순간에 포착된 한가지 인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 장의 인물사진을 통해서 그 사람의 정체성을 증명 하려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1974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전시했던 "제이콥 이스라엘 아베돈" 이라는 제목으로(그의 아버지다.) 6년간의 시간 추적을 통하여 자기 아버지의 죽음을 맞는 순간 까지의 사진을 보여 주고 있다. (1년에 한 장씩 6장으로 구성된 사진) 아베돈은 아마도 그 작품에 의도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짜 맞춰 넣음으로써 사람들에게 어떤 감동을 주려고 계산했을 것이다. 즉, 아베돈은 개념적인 문맥으로 사진을 연속적으로 배치해서 그의 꺼져가는 아버지의 실체를 잡으려 한 것이 아닐까? 아베돈은 사진의 이 기호학적 특성을 잘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여진다.
아베돈의 이러한 인식은 한장 한장의 사진을 따로 독립된 형태로 취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유형학(typoiogy)적 논리로 사진을 전시장에서 배치하고 책을 편집한다. 아우구스 잔더의 방법과 유사한 일련의 이 형식은, 한 장의 사진으로 애매한 “의미”를 연속적인 반복적 효과로 모종의 작가의도를 반영하게 된다.
비슷한 유형의 반복, 이것은 개별적으로 사진이 떨어져서는 그 힘이 약해진다. 그러므로 그는 작품을 전시하기 전에 미리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모형의 미술관 내부의 공간을 설치하여 각 작품의 차지하는 공간과 옆 사진들과의 관계를 미리 계산하여 전시에 완벽을 기한다.
그는 또 프린트의 질도 역시 전시회를 위해 모더니지(Modernage Lab.)에서 그의 수석 인화담당 조수의 감독아래 전시용 프린트의 기준을 정하는 한편, 하나 같이 공들인 인화을 특별히 준비한다. 물론 책으로 출판되는 인쇄용 프린트는 다른 일련의 기준 하에 준비한다.
아무런 연출된 상황이 없는 것 처럼 보인는 스트레이트한 아베돈의 사진들은 결국 이처럼 작가의 철두철미한 계산에 의해서 완성되는 사진적 리얼리티의 극치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