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 - 미안해요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댔죠
무슨 의미인지
차갑게 식어버린 말끝에
단단히 굳어버린 몸짓에
환하게 웃음 짓던 얼굴
쉼 없이 울리던 심장소리
행복이란 작은 읊조림도
내게는 너무 큰 세상이었던들,
애써 감추며 모르는 척 뒤돌아서서
멍한 눈망울 가슴저림도
미칠 듯이 밀려오는 그리움에 헤어날 수 없어
난 정말 안 되는거니
이미 시작된 엇갈림 속에
다시 사랑은 멀어져 가고
알면서 붙잡을 수 밖에 없었던 이 마음
미안해요
미안해요
자신감을 얻다
음악을 제대로 접한 적도 없고
악보를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그야말로 주산만 튕기던 그녀에게 아카데미 생활은 좌절의 연속이었다.
난 뜰 거야!하고 자신했던 그녀의 패기는 점차 무너졌다.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음악이 아니야 라는 혼란에 괴로웠다.
현란한 테크닉을 구사하는 동기들 사이에서
창 발성이 남아있던 그녀는 그야말로 낙동강 오리알된 심정이었다.
동기들은 판소리만 하고 있는 그녀를 손가락질하며
저 애는 무슨 국악을 한대니?하고 수근거렸다.
그리고 96년 12월 28일’.
그녀는 그 날짜를 잊지 못하고 있다.
가수 한영애씨의 특강.
그녀는 거기서 가장 중요한 것을 배웠다.
우리나라 소리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냐?며
강의를 시작한 한영애씨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리다.
자기 본연의 색깔을 낼 수 있는 자기만의 소리를 찾는 것이 보컬이다라고 말했다.
아카데미 1년 과정이 끝날 때까지
무대 한번 올라간 본 적이 없는 촌년에게 그 조언은 가슴깊이 각인됐다.
그리고 다시 재등록했다.
아카데미 청소부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저 청소부였을 뿐이다.
아무도 노래로 그녀를 기억하지 않았다.
동기생들이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을 흉내낼 때
그녀는 판소리를 하면서 발성연습에 몰두했다.
그러던 중 보컬 리뷰라는 수업이 있었다.
첫 무대였던 셈이다.
지금껏 수업 중 자기 색깔로 느낌 있게 부르는 사람은 처음이다.”
이것이 그녀의 무대를 본 강사의 평가였다.
반응은, 너무나 좋았다.
청소부였을 뿐인 그녀는 노래로 다시 평가 받았고 자신감을 얻었다.
블루스, 내가 찾은 음악
그녀는 올해 3월,
그룹 신촌 블루스 보컬로 영입됐다.
그녀는 그저 내 나름대로 노래를 한 것이었을 뿐,
블루스를 하려고 했던 건 아니라고 말했다.
그녀가 느낀 블루스의 매력은
이것이 블루스다 라고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음악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그저 좋아하고 즐긴다는 점이었다.
그녀가 블루스를 접하고 즐겼던 것처럼,
관객들도 그저 즐겼다.
글도 못 읽고 악보도 못 보는 사람들에게서 나온 음악,
리듬만이 존재하는 블루스는
어쩌면 그녀에게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현학적으로 따지지 않고
자기 멋대로 즐기고 빠지는 것.
그녀는 이태원 클럽 just blues를 시작으로 무대를 휘저었고
클럽에 자리가 없을 정도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 뒤 그저 노래 시켜준다고 해서 들어간 것이
페미니스트 타이틀을 건 마고 밴드였다.
페미니스트라는 단어조차 생경했던 그녀에게 마고 밴드는 익숙치 않았다.
그녀는 운동권 음악이 시시했다”.
각종 여성단체 행사에 불려 다녔지만 음악으로 승부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밴드니까 써주는 것 같았다.”
만족할 수 없어 결국 밴드에서 나왔지만 중요한 걸 건졌다.
엄마성.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자란 그녀에게
부모성 함께 쓰기라는 발상은 충격적이었다.
“내 모든 사상은 엄마”
그녀는 페미니즘은 몰라도 엄마의 삶은 알았다.
소리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궁핍한 생활은 늘 엄마의 몫이었다.
글도 읽을 줄 모르는 엄마는
시골 소작농의 아내로 6형제를 낳고 키우고 집안을 건사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막내인 그녀를 늘 지지해주고
묵묵히 믿어줬던 엄마. 엄마의 삶 자체가 그녀를 구성했다.
엄마의 성, 허씨.
그녀는 엄마성을 자기 이름에 달고 싶었다.
그리고 달리고 싶다 는 의미의 달림. 강허달림.
그녀가 새롭게 찾은 이름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좀 이상했다.
사람들은 그녀가 엄마성을 쓴다는 이유만으로 같이 음악을 할 수 없다고도 했고
무작정 싫어하기도 했다.
그녀의 본명은 강경순이다.
공경할 경’, 순할 순’. 그녀는 순할 순 자가 싫다고 했다.
서울에 와서 순하게만 살면 안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고등학교만 졸업한 시골 촌년에게 사람들은 좀처럼 문을 열지 않았다.
아니, 자신도 문을 열수 없었다.
신촌의 한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할때
그 곳 사람들은 누구나 이즘 이니 사조를 이야기했고 몇 학번이냐?고 물었다.
음악을 사랑하고 영화를 좋아했던 그녀지만 좀처럼 입을 열수 없었다.
압구정에 있는 클럽에서 공연할 때는
지하철 문만 열려도 그 낯설고 불편한 공기에 인상이 찌푸려졌다.
무작정 사람들에게 다가서고 마음을 여는 그녀는 푼수였을 뿐이다.
사랑하고, 사랑 받는 것이 서울에서는 쉽지 않았다.
서울 생활에 지친 그녀는 한달 동안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켜봐 주었다.
몰래 돈을 쥐어주며 시내에 나갔다 오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생각했다.
사람들에게 안달하지 말자.
내 방식으로만 다가가 문을 열어 달라고 하지 말자.
그들 방식을 존중하고 지켜봐 주자고.
오랜만에 복작대는 식구들 사이에서 추석을 보내면서 그녀는 힘을 얻었고,
다시금 자신을 바라보았다.
서울생활 10년,
이제는 본연의 자신을 찾겠다면서 그녀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 나 촌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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