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그림

기억의 공유 Sharing memories

음악은 나의삶 2010. 12. 28. 11:13

이미경 展

 

 

 

"기억의 공유전"

봄날에-김제에서_100x80cm_inkpen on paper_2010

 

 

 

나 어릴적에 01_100x60cm_inkpen on paper_2009


 

행복슈퍼_50x50cm_inkpen on paper_2010

 기억의 공유 ------

 

 내가 십여 년 동안 구멍가게를 찾아다니며 보았던 우리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은 삶의 현장이었지만, 그곳에는 분명 고고함과 여유와 따스함이 함께 쉼 쉬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주변에는 높은 담벼락과 굳건한 대문, 날카로운 쇠창살과 단단한 자물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도 문은 조금씩 열려 있고 쉽게 드나들 수 있어, 마음의 고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비상구 역할을 충분히 하고 있다. 혹자는 구멍가게의 상대적 개념으로 최첨단의 기술로 무장된 웅장한 빌딩이나 역사적 가치가 빼어난 조형물을 비교하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가끔씩 도심의 중심부에서 마천루가 즐비한 콘크리트 숲을 거닐다 보면 과연 우리세대의 대표적 정서가 무엇인지조차 혼란스럽다. 고위 정치인들도 선거철이면 자신이 구멍가게 같은 서민의 뿌리임을 강조한다. 얼마 전 모그룹 회장의 ‘우리도 10년 전에는 구멍가게였다’ 라는 화두가 매스컴에 발표 되었었다. 길을 지나다 우연히 조그만 구멍가게를 만나면 너무나 반갑다. 이렇듯 각자의 기억 속 구멍가게에는 소박하다, 작다, 정겹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다만 그 의미를 해석하고 이해하는 차이 즉, 과거로의 두려운 회귀와 소중한 추억의 향수가 다를 뿐 구멍가게는 확실히 우리세대 의식에 깊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군가가 향유하는 소소한 미덕이 어느 누구인가에게는 지워내고 싶은 치욕으로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고 역사임을 어찌 한탄하겠는가?

아차산역가판대_55x45cm_inkpen on paper_2010

 유통 체인점과 초대형마트나 인터넷 홈쇼핑 등의 모든 산업이 생산자 중심으로 기울어져 있어 소비구조가 한계를 넘고 있다는 것을 철저한 소비자 중심의 구멍가게와 비교해 보면 공간지각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금방 파악할 수 있다. 넘쳐나는 물량과 덤핑 공세가 수많은 부자병(Affluenza)을 양산하는 디지털시대의 구석에서 조금씩 팔고 조금의 행복을 얻는 그 곳은 걸어서 가야하고 띄엄띄엄 있기에 다소 불편하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흥정과 소통이 있어 정보 매체와의 전쟁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 강한 태풍과 같은 소비의 홍수가 동네라는 공동체 개념마저 앗아가 버렸지만 이 곳에서는 잠시 숨을 고를 여유가 있다. 시간에 대한 이해는 쉽게 사라져가는 것들의 다른 의미를 일깨워 준다. 지나온 시절의 아쉬움은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자동차를 버리고 마차를 타고 다닐 수 없고 컴퓨터를 버리고 살 수 없다. 시대의 흐름은 막을 수 없지만 그 연결고리를 찾는다면 기억의 풍요를 공유하며 누릴 수 있다. 역사와 영화가 그렇듯이 구멍가게도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저번 전시에서는 없어지기에는 너무 아깝고 기품이 있어 당당하게 동네의 파수꾼을 자처하며 외딴 바닷가든 첩첩산중이든 민간인 출입통제구역이든 그 속에서 꿋꿋하게 버티고 있는 구멍가게를 주로 찾아다니며 그렸다. 장자상회, 진건상회, 종점슈퍼 등 주로 도심 주변의 구멍가게들이 개발의 기치아래 폐허가 되거나 사라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시계, 달력, 우체통, 쉼터의 든든한 의자까지 덩달아 사라졌다. 요즈음 사라진 몇몇 곳을 둘러보면 새삼 허탈함에 발길을 돌린다.

꽃가게_70x50cm_inkpen on paper_2010

 다소 어눌하고 어질어져 보이는 구멍가게 풍경과는 달리 내 그림은 절제된 구도로 일관하고 있다. 하나 하나 그 가게의 내부까지 정돈된 모습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무엇을 파는지, 주인은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가게에 비치된 물건들은 절대 풀 수 없는 암호로 그려지는 궤적의 낯선 집합이 아니다. 날카로운 펜의 재질에도 그 영향이 있고 내 마음에도 그 이유가 있다. ‘비록 소소한 정이라도 기개가 없는 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작업 내내 나와 함께 했다. 빠르고 쉽게 다량의 작업을 선보여야 하는 작가로서의 아쉬움을 대신하여 힘들고 중노동에 가깝게 그리면서 실사에 바탕을 두어 한터치 한터치가 무의미를 표방하지 않도록 선긋기 중첩에 심혈을 기울였다. 단순히 유희로서의 자동기술적 끄적거림도 아니고 사대부의 정신수양으로서의 운과 획도 아니며, 해탈의 경지에 오른 무념의 선묘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보고 그린다’는 행위가 내 그림의 중심이고 동시대의 대표적 서정을 정리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내 작업의 모태이다. 그 곁에 엄마가 있다. 터진 옷을 기워줄 엄마의 보물상자인 반짇고리가 있고 차가운 밤공기를 마시고 집에 돌아오는 나를 위해 묻어둔 포근한 이불속에 공깃밥이 있다. 투박하지만 서민적인 반짇고리나 모란꽃 문양의 수가 놓아진 이불이나 베개, 그 속의 공깃밥 같은 모성(母性)의 또 다른 기억이 내 작업을 계속하게 할 것이다.

 아직 구멍가게 살리기 공공미술프로젝트나 사진과 판화의 힘을 빌어 다양한 장르로 내 그림을 선보일 여력이 없다. 당분간 엄마 품 같은 포근한 미소를 머금게 하는 그림을 더 찾아 그리고 싶기 때문이다.

2010.8. 이미경

엄마의 보물상자_80x80cm_inkpen on paper_2009

회상_55x55cm_inkpen on paper_2010

                                        이미경_형제상회_종이에 잉크펜_60×100cm_2010

 

이미경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친숙한 팬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그림을 그린다. 팬이라는 소재는 비교적 단순하고 드로잉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인식 때문에 회화의 한 장르에서 초대받지 못한 손님으로 비추어지곤 하지만 이미경에게 팬은 특별한 존재이다. 무엇보다 이미경은 펜이 가지고 있는 날카롭고 섬세한 특징을 잘 잡아낼 줄 알며 그러한 매력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작가이다.

 

                                               이미경_금곡정류장가게_종이에 잉크펜_70×100cm_2010

 

실제로 그녀의 작품을 자세히 드려다 보면 선의 굵기가 칼끝 보다 더 예리하고 얇은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러한 선들이 하얀 종이 위에 꼼꼼하게 채워져 있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놀랍다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 올 수 밖에 없게 만든다. 또한 정직하게 쌓아 올린 선과 선이 서로 마주하면서 그 사이에 생기는 여백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여유로움을 느끼게 만들어 준다.

 

                                        이미경_아차산역가판대_종이에 잉크펜_55×45cm_2010
                                                   이미경_꽃가게_종이에 잉크펜_70×50cm_2010

 

이미경에게 있어 구멍가게는 마음의 고향으로 빨려 들어가는 비상구 역할을 한다. 그곳은 모든 실수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친 할머니 같은 다정다감한 미소가 있어 정겹다. 그곳이 이번 전시를 통해 진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마음의 안식처이며 따뜻한 어머니의 품 같은 곳이 되기를 기대한다.

 

Giovanni Marradi- I Love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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