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zz·Blues

[Anita O’day]Sing Sing Sing

음악은 나의삶 2009. 8. 8. 20:20

[Anita O’day] 

 

아니타 오데이는 분방한 멜로디와 스캣, 독특한 리듬과 스윙감으로 1950~60년대 미국 보컬 재즈의 황금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하나로 자리잡아왔다. 특히 당시 여성 보컬의 전형을 깨는 기이한 풍모와 행동으로 ‘재즈계의 요부(Jezebel of Jazz)’라는 애칭으로 불려왔다.


1918년 생인 오데이는 7세 때 질환으로 편도선을 잘라낸 후 심각한 우울증에 빠지는가 하면 10대 초반부터 심각한 약물중독에 빠져 20대 때 이미 약물 소지 혐의로 투옥되는 등 어려서부터 지난한 길을 걸어왔으나 이를 독창적인 음악 세계로 승화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편도선 절제는 비브라토(떨기 창법)를 거의 불가능하게 하는, 가수로서는 치명적인 장애를 낳았지만 오데이는 오히려 이를 자신만의 고유한 창법으로 극복해 냈다.


진 크루퍼(Gene Krupa)와 스탄 켄튼(Stan Kenton) 등 거물들의 밴드에서 보컬을 맡으며 이들이 명성을 얻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솔로 활동으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 왔다.


오데이는 최근까지 LA의 클럽에서 노래를 해왔으며 올해 편집 음반이 아닌 새로운 정규 앨범인 ‘Indistructible!’을 녹음ㆍ발매해 세간을 놀라게 한 바 있다.


‘Sing, Sing, Sing’ ‘Sweet Georgia Brown’ 등의 곡이 유명하며 57년 실황 앨범인 ‘Anita Sings the Most’ 등 50~60년대에 발표한 다수의 음반이 명반으로 꼽힌다

 

아니타 오데이는 2006년  숙환으로 8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Anita O’day]Sing Sing Sing

 

 

 

[Benny Goodman]

 

Benny Goodman과 그의 밴드가 파라마운트 극장에 도착했을 때(1937.3.3. 아침) 젊은 학생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사실, 그는 당시 최고의 여배우 Claudette Colbert가 주연한 영화에 앞서 막간을 이용해 8시 30분에 시작될 그의 밴드공연이 그렇게까지 성공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밴드가 "Let's dance,"를 연주하면서 약간 경사진 스테이지위로 나타나자, 12,000명의 청중들은 모두 흘러나와 객석의 통로며,밴드스탠드,그리고 빈틈없이 작은 공간까지도 발디딜 공간을 남겨두지 않았다. 그의  싸인(autograph)을 받으려고 아우성치고, $900 어치의 기념캔디를  나꿔챙기느라 온통 난리법석이 났다.

 

43분간의 그의 연주가 마지막 곡 "Sing Sing Sing"으로 끝날 때, 이미 스윙시대가 시작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